자기자비로서의 시련 완수

릴케는 마치 ‘작업을 완수한다’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‘시련을 완수한다’라고 했다.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.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,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.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. - [[죽음의 수용소에서 (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)]] 반복적으로 회피하는 것들은 내 삶에 큰 제약과 두려움을 야기합니다. 올해 이런 것들을 깨보려고 두려워하는 것에 하나씩 도전 혹은 직면하는 중입니다. ...

May 24, 2025 · 2 min · slowdive14

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,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

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,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고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,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. -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참혹한 수용소 환경에서 누군가 이야기합니다. “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?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.” 이 말을 듣고 빅터 프랭클은 아내 생각이 났고, 그 누구도 말은 없었지만 자신이 그랬듯 다들 자신의 아내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추측하는 대목입니다. 그러면서 아내가 웃는 모습,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떠올립니다. ...

May 9, 2025 · 1 min · slowdive14